한겨울 대용량 반값 사료의 달콤한 덫

Drag to rearrange sections
Rich Text Content

저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대학원 생활을 버티고 있습니다. 야근하다 새벽 두 시에 돌아와도 현관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 주는 녀석들을 보면, 논문 스트레스가 잠시나마 녹아내리거든요. 다만 사료 소비량이 장난이 아니라 월말이 되면 사료값과 제 카드 청구서를 놓고 한숨부터 나옵니다. 그렇게 통장 잔액을 걱정하던 어느 저녁, SNS 피드에 ‘6 개월치 프리미엄 사료 반값 공동구매’ 광고가 뜨는 걸 봤습니다. 브랜드도 평소 먹이던 제품이라 더 솔깃했고, “재고 30세트 한정, 오늘 밤 결제 시 무료 간식 박스 증정”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광고를 누르니 단체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연결됐습니다. 방장 닉네임은 ‘냥냥사료언니’였고, 인사말부터가 살갑더군요. “제가 캣맘이라 대량 수입 후 나눔하는 거예요.” 채팅창에는 이미 “입금 완료했습니다” “송장 부탁드려요!” 같은 메시지가 줄을 이었습니다. 다들 행복한 반응이라 저도 얼른 참여하고 싶어졌죠.

첫 번째 찜찜함 ― 너무 빠른 할인 제안

입장하자마자 방장이 제 고양이 나이를 묻더니 “첫 참여라면 추가 1만 원 빼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 사료 용량도 말하지 않았는데, 가격부터 깎아 주겠다는 호의가 살짝 불안했습니다. 그래도 ‘이 기회 놓치면 손해’라는 생각이 앞서, 입금 계좌를 달라고 했습니다. 계좌는 개인 이름이었고, “사업자 등록은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급매라서 그렇다는 말에 순간 알겠다고 답하려다 고양이 두 녀석이 제 다리에 부벼대는 바람에, 잠시 마음을 진정할 틈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 찜찜함 ― 일정이 지나치게 급함

방장은 “내일 오전에 바로 배대지 보내야 하니 오늘 밤 11시 전 입금”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시간 압박이 심해질수록 불안이 커졌고, 저는 자연스럽게 이전 구매자 후기 사진을 요청했습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방장은 “다들 고양이 사진이 있어서 프라이버시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10분마다 “곧 재고 마감”이라는 알림을 올렸죠.

결정적인 순간 ― 우연히 본 닉네임

고민하던 중, 채팅방 공지에 적힌 택배 영수증 사진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송장 번호 일부가 흐릿했지만, 숫자 패턴이 낯익더군요. 예전에 고양이 모래를 구매했다가 배송이 오지 않아 환불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사기 신고글에서 본 번호 체계와 비슷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검색창에 방장 닉네임과 계좌 끝번호를 넣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먹튀위크에 지난달 등록된 “사료 공동구매 사기” 글이 바로 뜨더군요. 닉네임 철자와 계좌 은행 이름까지 똑같았습니다. 후기라던 영수증 사진도 그대로였습니다.

뒤돌아서며 든 생각

입금을 누르려던 손을 거두고 방을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돼 먹튀검증 사이트 Links to an external site. 게시글 아래에 “현재도 동일 방이 운영 중”이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장은 채팅방을 비공개로 전환했고, 몇 시간 뒤 아예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저는 대형 쇼핑몰 정기배송 이벤트를 찾아, 3 개월치 사료를 15 % 할인된 가격에 주문했습니다. 반값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정확한 배송 날짜와 고객센터 번호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들도 예정대로 사료를 받아 먹었고, 저 역시 통장 잔액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작은 결론

“오늘 밤에만” “재고 얼마 안 남음” 같은 말이 달콤하게 들릴수록,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길고양이 출신 두 녀석은 값싼 사료보다 안전한 주인을 더 필요로 하니까요. 그리고 혹시라도 또다시 기적 같은 할인 문구가 나타난다면, 저는 가장 먼저 검색창을 열어볼 겁니다. 한 번의 검색이 고양이 밥그릇과 제 지갑을 동시에 지켜 줄 수 있다는 걸, 이번 경험으로 충분히 배웠으니까요.

rich_text    
Drag to rearrange sections
Rich Text Content
rich_text    

Page Comments